로만 바실레프(왼쪽) 도요타 보쇼쿠 혁신센터 신사업개발책임자가 6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소노마카운티에서 열린 '뉴스위크 AI 임팩트 서밋'을 찾아 한국이 선보인 AI 피아노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광주과학기술원 제공
지난달 24일부터 이틀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뉴스위크 AI(인공지능) 임팩트 서밋' 행사장에는 특별한 피아노가 놓였다. 한 세션이 끝나고 다음 세션이 시작될 때까지 참가자들은 이 피아노가 들려주는 배경음악을 감상했다. 종종 참가자의 요구에 맞춘 즉흥곡도 선보이며 행사장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다. 피아노 연주자는 한국 연구진이 개발한 AI였다.
사람의 정서를 파악해 그에 어울리는 곡을 즉석에서 만들어 연주까지 해주는 국산 AI 시스템이 국제 무대에 데뷔했다. 자체 개발한 이 시스템을 서밋 현장에서 선보인 광주과학기술원(GIST) 연구진은 "참가자와 실시간 대화하며 즉석에서 곡을 만들어낸 점이 특히 큰 관심을 끌었다"며 "기술의 일상 친화성과 감성적 소통 역량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1일 GIST에 따르면 뉴스위크 AI 임팩트 서밋 현장에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를 비롯한 글로벌 빅테크의 C레벨 리더들이 다수 참가했다. 서로의 협력 가능성을 모색하고, AI 기술의 미래를 논의하는 이 자리에 GIST의 AI 피아노가 특별초청을 받았다. 국내에서 사람 연주자와 합주를 한 적은 있지만 세계 무대에 선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AI 피아노가 처음 세상에 나온 건 2016년이다. GIST 인공지능연구소가 화성학을 비롯한 여러 음악 이론을 학습시켜 인간이 작곡하는 방법을 모사하도록 개발한 AI다. 무작위로 음표들을 만든 뒤 음악적 가치를 스스로 측정하며 곡을 만드는데, 이를 반복하면서 곡의 완성도를 점점 높여갈 수 있다. 연구진은 그래서 이 기술에 '진화하는 음악(Evolutionary Music)'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봄(EVOM)'이라는 애칭을 지어줬다.
6월 24, 25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뉴스위크 AI 임팩트 서밋’ 행사장에 광주과학기술원(GIST) 인공지능연구소가 개발한 AI 피아노가 전시돼 있다. GIST 제공
연구진은 2022년 이봄을 자동 연주가 가능한 피아노에 탑재해 시연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실제 연주자와 국내에서 합주 공연을 열었고, 이게 알려지면서 이번 서밋에 초청받았다. 연구진은 서밋 연주를 위해 미국 현지에서 피아노를 렌트까지 했다. 연구진은 "AI 기기를 부착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된 최신 피아노는 외부 신호를 받으면 센서가 건반을 누르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자동으로 연주되는 것 같은 효과를 낸다"고 설명했다.
업그레이드된 이봄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사람의 감정과 상황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곡의 장르와 템포 같은 음악적 요소를 분석해 작곡하고 연주하는 기능을 갖췄다. 전문 분야 특화 대규모언어모델(sLLM)을 활용해 대화 텍스트에서 창작 요소를 추출하고, 이를 실시간으로 AI 작곡 시스템에 전달하는 기술을 구현한 덕분에 이번 서밋에서 대화한 참가자에 어울리는 즉흥곡을 선보일 수 있었다.
안창욱 GIST 인공지능연구소장은 이봄에 "AI 기술을 물리적 예술로 구현해보려는 시도"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AI 기술을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사람과 감성적으로 소통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시도"라고 덧붙였다.
흥미롭게도 서밋 현장에선 연구진의 의도를 넘어선 반응도 나왔다. 연구진이 현장에서 만난 빅토르 라울 카스티요 만티야 콜롬비아 국제병원 회장이 "병원 로비의 그랜드 피아노를 이봄 AI 피아노로 바꾸면 환자들의 정서 안정과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현했다고 GIST 측은 전했다.